진료실에서 나는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죠?”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소리는 공격이기보다 구조 요청일 때가 많다. 불규칙한 형광등, 알 수 없는 향, 예기치 않은 접촉 - 새로운 자극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 세계는 그들에게 홍수처럼 넘친다. 우리가 흔히 ‘문제행동’이라 부르는 몸짓은, 침수된 방에서 물을 퍼내려는 동작과 같다. 낯선 마트 대신 익숙한 동선을 고집하고, 예고 없는 변화에 멈춰 서는 일은, 살기 위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강아지처럼 매일 밖으로 나와 무리에 적응하라”고 요구한다. 교육의 이름으로 더 큰 소음과 더 잦은 접촉을 주입하고, 버티지 못하면 약을 늘린다. 약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극심한 불안과 자해의 고리를 끊어 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약물은 분명하게 제 몫을 한다. 하지만 약이 ‘우리 기준’에 맞추기 위한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치료의 목표는 순응이 아니라 고통의 완화, 그리고 자기 방식의 생활을 회복하는 일이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보호자에게 묻는다. “산책이 꼭 필요할까요, 아니면 창가 햇빛이 더 큰 안심일까요?” 예고 가능한 시간표, 소음이 적은 공간, 질감과 향을 선택할 권리, 대화의 속도를 조절할 여유-이런 작고 구체적인 조정들이 자폐적인 삶을 덜 고통스럽게 만든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강아지의 리듬을 가르치는 대신, 고양이의 리듬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름을 훈육의 대상으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그들의 세계도 -그리고 우리의 세계도-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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